새로운 간판들 정말 아름다워 보이세요? ↑트랙백 원문. 덧글들도 한번씩 훑어 볼 가치가 있다.
본격적인 간판 정비사업이 시작되었고 이전에 없던 규제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들과 견해들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건강하고 좋은 현상이며 이러한 견해들이 계속 반영되어 공공디자인은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것이다. 다만 이 중에 키워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반응 몇개가 보여서 잠시 폭발하도록 하겠다.
세상에는 이래서 '잘 알아보고 떠들어라'라는 말이 있다.
'현장일 안해본 놈일테고' '병신 머리'
라는 전투적인 어휘들에 대해서 태클 좀 걸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업은,
당신네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현장에서 뛰던 건축계 최고 머리들에서 시작된 겁니다.
본 사업은 디자인 계에서 오랜기간 논의된 일종의 숙원사업이었다.대한민국 건축계에서 내로라 하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계획안을 짜들고 연구를 거듭하여 관청에 '간판 디자인 대책'을 제시해왔지만 '그런 걸 뭐하러 신경써!'라는 관청의 무시와, '이 또한 아이덴티티이다'라는 디자인계 내부의 목소리에 힘을 잃어 번번히 무시되어왔다. 그러한 목소리가 '서울을 좀 입맛대로 예쁘게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가진 오세훈 시장의 마인드와 맞아떨어진 것 뿐이다. 어째어째 현 정권과 시기가 맞아떨어지기는 했지만 관청 주도의 새마을 운동과는 절대로 성격을 같이하는 사업이 아니다.
공공디자인에 대해 열정을 갖고 서울시청을 드나들며 끊임없이 대안을 제시하시던 노교수님들 중 몇 분이 우리 학교에 계신다. 한 분은 전임 교수로, 다른 두분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시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시절, 공공디자인에 대한 그 전임교수님의 프레젠테이션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열정적인 강의와 간판공해에 대한 문제제기가 끝나고 교수님은 반대측의 의견을 전해주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략 이러한 논조로 교수님은 반대측의 의견에 또박또박 반박 의견을 제시하셨다.
"이러한 현 상황이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특이성이고 우리만의 디자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만, 저는 이 의견에 반대합니다. 첫째, 불과 20~30년만에 아무런 논의와 대책 없이 무분별하게 형성된 이 상황에 과연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담겨 있느냐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둘째, 설령 그것에 아이덴티티가 담겨있다고 가정해도, 디자인 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나와서는 결코 안되는 겁니다. 셋째, 나는 결코 이러한 간판 공해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애정과 공공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갖고 수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나온 이 정책이다. 건전한 문제제기와 가변성에 대한 불만제기는 얼마든지 있어야하고 그것은 반영되어야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현장 경험 없는 책상물림'이라느니 '병신 머리'라느니 하는 어휘로 함부로 깎아 내리지 말았으면 한다. 현장의 벽돌 디테일 하나하나를 살리기위해 소싯적에는
인부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같이 벽돌도 쌓던 분들이고,
환갑을 넘기신 아직까지도 창틀, 기둥 디테일, 경사로에 놓이는 화강석 디테일 등등을 하나하나 직접 손보기위해 작업 현장에는 꼬박꼬박 얼굴도장을 찍으시는 분들이다. 그 누구보다 현장 작업에 도통하고 건축 디테일과 건물 짓는 과정에 대해서 벽돌 하나 놓는 일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분들이다.
당신네들의 좁은 머리 속에서 함부로 이 분들을 재단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또 하나, '우리가 유럽의 상황을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여기에도 한마디 첨언해야겠다. 우선 원문 포스팅에서 예시를 든 사진을 보자.
어느 덧글에도 보이지만 이곳의 간판들도 크기, 색상, 형태에 대해 상당히 심한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저 간판들이 자유로워 보인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러한 형태의 간판이 매우 오랜기간 삶 속에서 많은 실험을 거친 완성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굳이 유럽의 간판사를 훑지 않더라도 중세 유럽을 다룬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건물에 까치발 트러스, 혹은 켄틸레버 형태의 철골 붙이고 그 아래 간판을 다는 형태가 수백년 된 저곳의 전통이라는 것을. 건물들조차 르네상스 이후의 전통을 유지하려 해쓰고 있다는 것을. 유럽에는 이미 논의가 끝난 전통의 디자인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애석하게도 우리는 식민지, 전쟁, 관주도의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도시 디자인을 거의 완전히 상실했다. 조선시대의 간판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사료는 남아있는가? 유럽처럼 오랜기간 관청의 간판 규제가 존재했던 시기는 있었나? 이러한 전통의 상실과 우리만의 디자인 감각이 실종된 사이에 도시는 간판공해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기간을 따져도 우리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띄게 된 것은 거의 30~40년 이내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는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에 비하면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와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도시도 논리적으로는 저러한 형태를 따라가게 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인식속에 '우리 도시만의 간판'이라는 디자인 언어가 잡히기까지 수백년이 걸린 도시다.
한국의 간판 정비사업은 그 첫걸음에 불과하다. 다만 유럽과 같은 방식을 취하기에는 우리 역사의 특이성이 너무나도 강하기에 조금 다른 형태로, 관청의 주도로 시작하게 되었을 뿐이다.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는 불평은 대한민국 사람들의 창의성을 심하게 무시하는 행위다. 10~20년 후에 우리 도시에도 과연 처음 시작과 같은 일괄적인 디자인의 간판만이 있을까? 내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이다. 관이 규제한 디자인 언어속에서 사람들은 튀기 위해 별의 별 방안을 다 찾아 낼 것이고 그 방식들이 우리만의 간판 언어를 만들어 낼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인터넷과 눈썰미라는 무기가 있다. 이 무기는 어떤 도시보다 빠르게 우리만의 디자인 언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두고봐라.
10년후에는 결코 '새로 만들어진 간판은 획일적이다'라는 말은 할 수 없을거다. 오히려 일괄적인 네모곽에 원색으로 떡칠만 됐던 옛날 간판이 더 획일적이고 재미없게 보일거다.
또 짚고 넘어갈 덧글 하나.
건물에 대한 문제제기. 그렇다. 건축인들의 아킬레스건이자 뼈아픈 부분인 '허가방 건축' 혹은 '집장사 건축'에 대한 언급이다.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할 문제이다. 위에 제시한 유럽의 저 건물들, 보통의 아름다운 유럽 거리의 건물들도 다 집장사가 지은 건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알베르티가 지은 건물이 아니다. 다만 오랜기간동안 디자인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것이 우리의 도시다'라는 아이덴티티가 존재했기에 위와 같은 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한국 현대 건축의 역사는 아직 100년도 채우지 못했다. 건축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집장사 건물들도 디테일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공을 들인 흔적이 있는 것들이 많다. 벽돌 타일을 붙여도 될 건물에 굳이 자연석 마감을 한 건물, 창틀을 외벽에 맞추지 않고 굳이 내벽에 맞추는 수고를 들인 건물.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캐노피 물막이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공을 들인 건물. 다들 '성냥곽 건물'이라고 얕잡아보고 욕하는 건물이지만 알게 모르게 건축에 대한 열정을 숨기고 건축주의 요구에 입맛을 맞춰가며 만든 건물들은 도시 곳곳에 숨어있다.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집장사 건물들도 현대건축의 거장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Less is more'를 외치며 재미없는 건물의 아버지가 된 미스 반 데어 로에. 초원의 건축으로 불리며 근대 건물에서 전통적인 지붕을 쓰는 정석을 보여주었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도미노 이론을 바탕으로 재미없는 구조 속에서 백색의 깨끗한 입면에서 다양한 디테일로 다양성을 추구해보았던 르 꼬르뷔제. 수직과 수평, 빛의 삼원색만으로 공간과 디자인을 실험해 보았던 집단 데 스틸. 성냥곽 건물이라고 얕잡아 보는 건물들에도 이들 거장의 요소는 빠지지 않고 숨어있다. 누가 '성냥곽 건물'이라고 얕잡아 보이려고 건축을 시작했겠는가. 처음에는 누구나 마음속에 '나도 미스가 되고 싶다. 라이트에 뒤지고 싶지 않아. 꼬르뷔제를 뛰어넘어 보이겠어.'같은 포부를 안고 먹고 살기도 힘든 건축디자인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러한 거장을 낳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 초년병들도 삶에 적응해버렸을 뿐이다.
대한민국의 건축 디자인, 도시 공공디자인은 이제부터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건물은 재미 없으니 간판 정리따위 해줄 가치도 없다'는 의견은 우리 공공 디자인의 발전 가능성을 뿌리부터 막아버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간판을 다 정리한 건물들의 쌩얼을 보고도 재미 없는 '성냥곽 건물'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지켜보겠다.
'한국 건물은 네모반듯하다'는 생각은 네모난 아파트들과 네모 반듯한 간판들의 집합이 주는 인상에서 나오는 고정관념이다. '어차피 간판으로 다 가려질텐데'하는 건축가들의 자포자기에서 출발한 현상이기도 하다. 이번 간판 정리는 단순히 공공 디자인적인 측면을 넘어서 도시 건축의 발전에도 크게 일조할 가능성이 크다. 커다랗고 흉물스런 간판이 붙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건축가들은 더욱 신이나서 디자인 작업에 매달릴 것이다. 그리고나면 이전보다 깔끔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입면의 상가들이 속속 들어설 것이다.
-결론-
도시 공공디자인에 있어서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빠르게 디자인 선진화를 이루려면 관주도의 디자인 사업도 분명 하나의 방법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갖는 부작용을 우리는 이미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어 왔고 디자인과 도시사업에서도 그러한 점이 없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들이 번지고 있다.
그와 관련해 '시민의 삶을 존중하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는 곧 '시민이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는 명제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 있어서 간판 정비 사업은 충분히 시민의 삶을 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자인 교육을 강화해야 하지 않느냐'하는 의견도 있는데, 이러한 가이드라인의 제시 자체가 관심도 없는 바쁜 상인들을 불러서 꾸벅꾸벅 졸면서 디자인에 관한 강의를 듣게 하는 것 보다 훨씬 교육적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본 사업에 대해 논하기 전에 네이버에서
'간판 공해'라는 키워드로 검색부터 해보길 권한다. 간판의 홍수속에서 두통을 느끼고 길을 헤맸던 사람들이 소수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현장경험 없는 책상물림도, 병신머리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이루어진다고 모두 대통령의 머리속에서 나온 사업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정부가 하는 일에는 좋은 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