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와 숙녀 - 박인환 └詩

목마와 숙녀

박인환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그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립(孤立)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1950년대 젊은이들의 흔한 멘탈 붕괴.'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유는 역사적, 문학사적 의의가 크게 작용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시를 보고만 있어도 그 시절 선술집 구석에서, 좀 배웠다는 젊은이들이 우중충한 분위기로 우울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까? 술을 마신 것을 표현하기 위함인지, 나름대로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에 따라 글을 쓰고 일부러 다듬지 않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저'라는 단어가 운율에 상관 없이 네 번 등장하고, 버지니아 울프는 '늙은 여류작가'라는 언급까지 포함해서 시의 초반, 중반, 종반에 한 번씩 등장합니다. 쉬운 말로 했던 얘기 또하고 했던 얘기 또 하고 있는거죠. 취한겁니다.

 시상의 전개나 단어의 선택은 당시의 시로서는 굉장히 '모던'했습니다. 요즘의 기준으로 다시 보자면 허세쩔지만 당시엔 멋졌어요. 그래서 '허세의 시대'인 1970~1980년대까지도 사랑을 받고, 1974년에는 통기타 가수인 박인희(주1)씨의 앨범에 실리기도 합니다. 노래가 아닌 '시낭송'으로요. 그런게 통하던 시대의 시입니다. 누군가 그랬듯 '패션은 시간이 지나면 촌스럽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라는 겁니다. 박인환 시인이 '작품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오간다는 평이 종종 보이는 것은 이런 작품들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 그 자체로 들어가면 내용은 크게 버지니아 울프(주2)의 이야기와 목마를 탄 아가씨를 회상하며 멘탈 붕괴를 시전하는 이야기로 나뉩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다 적혀있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버지니아 울프와 의식의 흐름 등등의 문학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목마의 숙녀'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목마의 숙녀'는 술자리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차버린 여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결론은 닥치고 페시미즘'이 되겠습니까. 옆에 앉은 사람이 평생 여자한테 차이고 산 쇼펜하우어를 하면서 위로를 건네는 장면도 상상됩니다. 그 아가씨는 꽤 글래머이기도 했는지 '두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는 뱀'이 야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한 모양입니다. 뒷담화를 이렇게까지 할 정도면 심하게 차였나봅니다. 취해서 술병을 쓰러뜨리기도 하며 술자리는 슬슬 마무리되는 분위기 입니다.

사실 이 시는 '복학은 했는데 일은 안풀리고 그나마 마음에 뒀던 여자 후배는 힘 좋은 다른 후배 찾아 가버린 슬픈 밤'에 소주로 병나발 좀 불어 본 사람만 제대로 이해할 시입니다. 미성년자들에게는 가르쳐줘도 이 깊은 심상을 전달할 방도가 없어요. '야 이판국에 나 계속 글 써야되냐, 씨바' 같은 대화도 스쳐 지나가고 음담패설도 흘러간 남자들의 술자리, 딱 그 두어 시간을 함축해놓은 시란 말입니다. 괜히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었던 시가 아닙니다. 요새로 치면 바이브의 '술이야'정도의 느낌이랄까요. 이걸 시대의 아픔과 모더니즘 어쩌고 하면서 고결한 내용으로 가르치는 걸 보고 있자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주1) 박인희씨는 한 때 날렸던 여성 포크송 싱어입니다. 주로 번안곡이나 시낭송으로 유명했습니다. 박인희씨의 '목마와 숙녀'낭송과 히트곡 '방랑자'(번안곡)는 꼭 들어보시길. 그 목소리의 간드러짐은 이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모에하달까요.

(주2) 이 시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불우한 생애'의 대명사로 쓰고있다는 해석은 참 여러사람에게 피해를 줍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본인의 가정사와 추행 경험, 신경쇠약 증세 등을 겪기도 했지만 금전적으로는 매달 500파운드의 유산을 받으며 당시의 여성들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경제적, 지식적 자립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 남편은 30년간 성관계조차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아내를 위해 출판사를 차리기도 하는 등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는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기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 등이 보여주는 그 작품성과 페미니즘의 선구자들 중 한 명으로 평가 받아야 합니다. 시에 대한 왜곡된 해석으로 '불우했던 여성작가'의 이미지로 남는 것은 여러가지로 불행한 일입니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통계 위젯 (화이트)

20
28
124805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