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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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마이크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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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원영씨-
이거슨 오타쿠들의 승리.jpg
출처 : http://cafe.naver.com/sunyui/103417

미즈키 나나 홍백가합전 첫 출전.
12월 31일은 아프리카 TV 앞으로 집결합니다.

방송연예로 올릴까 애니메이션으로 올릴까 하다가 결국 애니메이션밸리로 보냅니다.
by 원영 | 2009/11/24 23:47 | 원영주저리 | 트랙백
대학 입시구조 개혁? 꿈 깨라.
한국사회를 쉽게 이해하는 그림 - 대학생

'공부'라 하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공부라는 그 말 자체는 '어떠한 기술이나 학문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디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에는 분명히 다른 명사가 붙어야 옳은 일이다. '국어 공부 열심히 해라.' '미술 공부 열심히 해라.'같은 식이다. 하지만 한국의 어른들은 아무 대상 없이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즐겨 쓴다. 공부 해야할 대상을 지시하지 않는다. 답답해진 학생들은 다시 묻는다. 그런데 그 물음도 '무슨 공부를 해야합니까?'가 아니다.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야 대상이 언급된다.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해라.'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끝까지 무슨 공부를 해야할지는 구름속에서 둥둥 떠있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행동을 지칭하는 '공부'그 자체가 객체화되어있다. 다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다들 마음속에서 느끼다시피 '입시 공부'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입시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염화미소의 경지에 올라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해라'같은 대화는 애초에 성립하지 않아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행복을 위해서 살아라. 도덕적인 삶을 살아라'라고 교과서와 입으로 가르쳐놓고 '입시 공부에나 열중해라'라는 식으로 뭔가 속물적인 주문을 하기에는 뒤가 찝찝한거다. 이 구린 행동에는 여러분의 부모님부터 이 나라의 수장까지 해당사항 없는 사람은 없을 지경이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어른들의 행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혼돈에 빠져든다. 한국의 초중고딩들의 개념 없음을 탓하기 전에 그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한다. 대한민국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정상적으로' 인지 부조화 상태, 이중 구속 상태에 빠진다. 집단적인 불안, 우울증,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언론은 문제를 호도하기에 여념없다. 학습 부담에 눌려서? 니들이 만들어놓은 암묵의 카르텔 때문이다. 다 같이 아이들에게 계획적으로 병을 만들어놓고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그 와중에 살아남을 사람들은 살아 남아서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이 카르텔의 쾌감 맛보게 된다. 대다수의 또래들이 목적을 잃고 삶을 표류하게 만든 후에 홀로 정상에서 맛보는 새디즘적인 쾌감이 사람을 붕 뜨게 만든다. 그리고 좀 더 자라고 나서는 자신이 겪었던 이중구속의 아픔을 바탕으로 인지부조화 상태의 최종 단계로 접어든다. '그래, 부모님 말이 맞았어. 사람은 공부를 해야되.' 그러니까 무슨 공부 말인가? '아, 입시 공부?! 그런데 대놓고 말하기에는 좀 뒤가 찜찜하네.' 그리고 전 단계의 과정이 되풀이 된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경쟁의 패배자들 또한 '부모님 말씀을 안들어서'라는 식의 인지부조화의 최종단계를 거치고 '공부해라' 카르텔에 합세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교육 경쟁은 자연스럽게 이전 세대의 것들보다 강도를 더해가고 아이들이 겪는 이중구속, 인지부조화는 더욱 심해진다.

이 카르텔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권이 얽혀있다. 직접적으로는 대학 관계자들, 사교육 관계자들이 있겠고 간접적으로는 이 경쟁에서 승리하여 단꿀을 맛보고 있는 소위 '잘 나가는 학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치킨레이스가 끝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더욱 진행되면 될 수록 자신들의 지위는 공고해지고 이권을 얻기는 쉬워진다. 생각할 겨를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기술'만 익혀서 사회로 나오는 햇병아리들은 부려먹기도 더 쉬워진다. 토익 900점 이상이라는, 상식적인 채점 제도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4.0이상의 학점이라는 무리한 조건을 요구해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아이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이의 제기를 할 사고력도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그들의 기준에만 맞춰주기 바쁘다. 문제제기를 하며 치고 올라올 '똑똑한' 젊은층을 만들 일도 없고 이 얼마나 기득권에게 좋은 제도인가.

한국 사회의 대학 문제 해결? 모두가 인지부조화와 이중구속의 그늘에 시달리는 한 결단코 불가능하다. 거대한 외부 충격 혹은 시스템의 거대한 붕괴가 있어야 한다. 바꿀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 제도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교육 공산당 선언이라도 한 번 할까? 집어치우자. '공부해라' 계급사회 속의 '노동계급'은 이 제도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힘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대신 힘들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억울하면 공부해서 성공하라.'는 지배 계층의 헤게모니가 헤게모니인줄도 모른다. 한국사회는 이대로 천년만년 잘 흘러 갈 것이다. 천조국에서도 상상도 못한 이 얼마나 엄청난 지배구조인가! 대한민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모든 관공서와 기업의 시작 시간을 한 시간씩 늦출 정도의 큰 이벤트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지배 구조의 핵심을 장식하는 가장 화려하고 극적인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ps. 등록금 후불제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겠는가?
'돈이 장벽이 되서 이 지배구조가 힘을 잃을 지경이라고? 그거 곤란하군. 일단 대학은 나와라. 그래야 이 구조가 계속되지.' 가 핵심이다. 게다가 대학 졸업자들이 빚에 짓눌려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게 만드는 1석 2조의 탁월한 정책인 것이다. 정부가 멍청해서 되나마나한 선심을 쓴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진짜 핵심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by 원영 | 2009/11/21 04:36 | 원영주저리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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