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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싸원영씨-
[렛츠리뷰]창작과비평 146호
0.
계간 문학지에는 참 많은 신작들과 새로 등단한 작가들이 등장한다. 건축계의 월간 건축잡지처럼 업계의 동향을 알기위한 최첨단의 지표일테다. 나는 그러한 기대로 창작과 비평을 처음 받아들었다.

1.
그러나 창작과 비평에는 문학 이상의 것들도 실려있었다. 흡사 종합 인문 지성지로 보일 정도로 정치, 시사에 관한 비평과 사설도 다양하게 실려있다. 문학이고 시사고 비평이라는 이름 아래 다 묶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주간지에 비해서는 언제나 한 발 늦을 수 밖에 없고, 그렇다고 월간지에 비해 심도가 깊은 것도 아닌데 전문 시사지도 아닌 계간 비평지에서 시사와 정치를 다루는 모양새가 그리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차라리 문학계의 동향이나 변화되는 창작론에 대해 지면을 더 할애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2.
시를 읽다보니 86년생, 88년생 등의 내 또래의 신인급 작가들의 작품들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반가운 마음에 시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아니나다를까 혹시나는 역시나로 바뀌었다. 신춘문예 양식이라는 것이 새로 생긴 모양이다. 자유라는 이름아래 다른 구속이 생긴 느낌이다. 현란한 발상과 물흐르는 듯한 표현은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시이고 노래라는 느낌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한 덩어리의 잘 다듬은 사념의 덩어리이고 강렬한 의미단위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시대의 흐름을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아직은 조지훈의 승무가 더욱 감미롭고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가슴을 흔든다. 입에 붙기는 윤하의 가사가 더 쉽게 붙고 상념에 잠기기에는 YUI의 일본어 가사가 더 편하다.

과연 오늘날의 문단이 원하는 시는 무엇이길래 이러한 사념 덩어리들을 양산하도록 장려하는 것일까. 그것이 단순히 '등단'이라는 권력을 평등히 배분하기 위한 제도의 결과물이라면 이 제도는 분명 고쳐질 필요가 있을테다. 이대로 목적의식과 시대정신을 잃은채 개인양식의 범람 속에 표류한다면 문단은 더더욱 대중에게서 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념과 의미는 충분하다. 이제는 제발 시와 노래를 읊고싶다.

3.
소설들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해가는 빠르기. 이미지를 전달하고 그것을 소화시키는 적절한 시의. 쉴새 없이 몰아치는 글을 쓰다가 베테랑들의 읽기 좋은 글을 보자니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내 스스로가 시나리오 창작론에만 집중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래 다가온다. 내 글에는 이미지와 사건만 있고 속이 비었던 느낌이다. 역시 일단 많이 읽고 봐야한다.

4.
오랜만에 많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딛고 나갈 동력을 다시 얻은 느낌이다. 좋은 기회를 준 이글루스와 (주)창비에 감사드린다.


렛츠리뷰
by 원영 | 2010/01/08 21:17 | 원영주저리 | 트랙백 | 덧글(2)
대중 음악의 기업화
대중음악은 자신을 포기했다.


한국의 대중음악은 어찌보면 기업화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곡을 생산하는 사람, 음악 자체를 생산하는 사람, 그리고 그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아이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완성도에 집중할 수 있다. 그렇기에 퍼포먼스와 완성단계에 있어서 그 결과물의 퀄리티는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아이돌 가수가 보여주던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그 결과 K-pop 한류라는 문화적 수출이 가능한 정도에 이르렀고 중국에서는 한국 아이돌을 모방한 그룹들이 쏟아지기에 이르렀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이일지 모르지만 비틀즈의 카피밴드가 쏟아졌던 그 시절 비틀즈의 위상을, 한국 아이돌들은, 적어도 아시아 안에서는, 지니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들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문제는, 그들로 인해 대중음악이라는 분야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는 데에 있다. 적어도 하나의 '상품'으로 팔리기 위해 기존의 아이돌가수들이 쏟아부은 비용은 엄청나다. '음악'하나만 들고 음반회사에 CD를 찔러보는 아티스트들에게 '상품'으로 그만큼의 능력이 있을리가 없다. 대중 음악의 기초체력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1인 중소기업'형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묻혀간다. 신승훈씨의 싱어송라이터 담론은 그런 차원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기초체력을 생각하는 업계인의 염려라 할 수 있다.

기업형 아이돌로 인해 사라져가는 대중음악의 다양성의 결말은 이미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의 형태가 보여주고 있다. 삼성, LG의 전자제품만이 해외에서 팔리는 현상. 대한민국은 곧 '삼성공화국'이 되어버린 현실. 대중음악계도 이와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SM, JYP, YG의 아이돌 상품이 아니면 소비되지 못하는 미래가 올지도 모른다. 그들이 높여놓은 비용적 진입장벽과 각종 인맥등을 통한 자체적 견제로 '1인 중소기업'은 시장에 발도 붙이지 못하는 그런 미래.

이는 결국 '돈 가진 사람들의 한탕주의'에 음악인들 자신을 묶어놓는 미래를 가져올 것이다. 예쁜 연예인 지망생들 좀 데려다 돈 좀 붓고, 괜찮은 작곡가도 좀 돈으로 사고 해서 투자하면 몇배가 되어 돌아오는, 자본의 새로운 투자창구로 음악인들 스스로를 몰아 넣는 상황이 머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이미 그런 시대가 반 쯤 왔을지도 모른다. 오디션 한번으로 시골처녀에서 신데렐라가 된 YUI, 54세(우리 아버지와 동갑이다)의 나이에도 오리콘 싱글 톱을 손쉽게 가져가는 쿠와타 케이스케 같은 아티스트가 나오는 일본의 음악 환경과 현재 우리 음악 환경을 비교했을때 우리 음악계의 현 상황이 어떤 지경인지 어렵지 않게 감을 잡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혹은 생존 전략으로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같은 담론은 의미가 있다. 자신들의 음악을 필요로 하는 시장을 찾아서 그에 맞는 투자와 생산으로 지속성을 높여가려는 시도는 기업형 음악이 자리잡아가는 현 시점에서 아티스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간 비용을 가능한한 줄여보려는 에픽하이의 맵더소울과 같은 시도도 의미를 가진다. 자칭 'IT강국'이라는 한국의 환경을 이용해 살아남아보려는 시도는 꼭 필요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언론의 변화이다. 주어진 대본도 제대로 못 읽는 음악프로그램의 얼굴마담 MC들을 치워버리고, 보고 또 봤던 아이돌들만 줄창 나오는 캐스팅을 다양화하고, 어떻게든 한시간 내에 많은 가수들을 밀어넣어 보려는 CD트랙식 편집도 의미 있게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음악프로그램의 질 자체를 높이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질을 높이기 위해 실제로 돈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진입 장벽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권위있고 일관성 있는 판매량 집계방식도 필요하다. 언론과 음악인들 스스로 자생력을 기르기 위한 시도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현재의 훌륭한 아이돌들을 문제로 삼아서는 안된다. 큰 문제는 기업형 음악으로 인해 설 곳을 잃어가는 1인기업형 아티스트들이다. 그리고 점점 줄어가는 한국 대중음악의 기초체력이다. 어떻게든 음악이 '팔릴 수 있는 상품'이 되기 위한 인적, 물적 진입장벽은 낮춰져야 한다. 데뷔를 기다리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1년에 몇번씩 들려오는 아이돌가수의 과로 실신, 스케쥴을 서두르기 위한 교통사고같은 비극을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음악인 자신들을 위해서, 또 다양한 음악을 원하는 대중들을 위해서, 자생력과 다양성을 기르기 위한 시도는 이루어져야만 한다.


ps. 본질적으로 HOT, 핑클 등등의 시절과 현재의 문제점은 바뀌지 않았다. 그 시절과 현재의 차이는 아이돌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시간과 자본이 더 투자된다는 것 밖에 없다. 그 결과 상품으로써 아이돌의 완성도는 훨씬 높아졌지만 그만큼 다른 아티스트들이 '상품'이 되기위한 진입장벽 또한 높아졌다. 근본적인 문제는 더욱 심화될 수 밖에 없다.
by 원영 | 2009/12/20 17:58 | 원영주저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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